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에페 1,4-5)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세례를 받고 교회에 모여 있는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정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에는 어릴 때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도 있고 어른이 되어서 예비자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나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시어 세례를 받고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시고 당신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우리를 필요로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하느님의 부르심과 선택에 “예!” 하고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지키기 어려워 보입니다. 빵도 여행 보따리도 돈도 가져가지 않는다면 당장 먹고 자고 하는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될 터인데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미워하셔서 혹독한 훈련을 시키시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뽑으신 이후에 처음으로 그들을 파견하시는 것인데 처음부터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키려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은 파견을 받고 떠나는 제자들에게 결국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우리가 끝까지 놓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진 돈이 여유가 있고 먹을 양식이 충분히 있고 내 배가 부르면 하느님을 별로 찾지 않습니다. 하느님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별로 없고, 먹을 양식도 별로 없고, 갑자기 어떤 사고나 불행한 일을 당하면 그때서야 우리는 하느님을 찾고 매달립니다. 내 힘으로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처음부터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오직 하느님만 굳게 의지하고 전도활동을 할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빵도, 여행 보따리도, 돈도 두둑하게 가지고 파견길을 나섰더라면 그들이 얼마나 하느님의 말씀을 열심히 선포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양식과 돈이 다 떨어지면 그냥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 먹고 사는 것을 그리 걱정하지 않고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찾는 데에도 그리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저 주일 미사만 빠지지 않고 오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 예수님의 명령은 우리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과연 얼마나 절실히 하느님께 매달리고 있는지, 그 어떤 것보다 오직 하느님께만 내 마음을 두고 의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