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지성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성이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지성을 바람직하게 사용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해력으로 하느님에게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지성을 사용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마음을 결정해 둔 상태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에 그의 말을 순수히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서 분별하는 게 아니라 그 이전에 그를 향한 내 마음을 먼저 개입 시킵니다. 그와의 과거에 대한 기억, 그를 향한 지금의 내 감정과 같은 것을 먼저 사전에 깔아두고 그 바탕 위에 그와의 대화를 이성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람이 친구를 만납니다. 헌데 전에 그와 크게 다툰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사실 아직 그때의 앙심이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둘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지만 여전히 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전에 있었던 다툼의 앙금이 남아있고 따라서 상대가 하는 말을 모두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합당하고 맞더라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괜히 반발하기 시작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내용에 발끈하고 반발해서 결국 그 둘의 대화는 이성적인 대화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치닫게 되기가 일쑤입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대체로 남자들은 여성과의 대화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그 순간의 이성을 사용하는데 여성들은 이미 그 남자와의 과거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지만,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있지도 않은 그 어정쩡한 상태가 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지성을 사용해서 이미 알고 있던 율법의 핵심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는 하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알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힘들어 합니다. 너희 가운데 보잘 것 없는 이를 사랑하라는 말은 들어서 알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안에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수영의 이론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지만 단 한 번도 수영을 해 본 적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머무는 이들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이미 살고 있는 이들,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실천할 때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도 논리적일 뿐, 실천하는 용기가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