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중에 축성되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은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아무리 살펴 보아야 알 수 없는 것일 뿐입니다. 그저 우리의 눈에는 빵과 포도주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축성을 마친다고 해서 그 외형이 변화되지도 않습니다. 그대로 빵과 포도주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그 내면의 실체만이 변화될 뿐이지요. 하지만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우리의 감각기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로 ‘기적’이 일어난 경우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의심하는 한 사제에게 그의 눈앞에서 기적을 남기셨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일일 뿐, 일상 안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빵과 포도주가 직접 바뀌어서 살과 피로 변한다면 그것을 직접 입으로 모실 수 있는 강심장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바뀌지 않는 것이 우리로서는 다행인 셈이지요.
이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믿음’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크기에 따라서 성찬례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믿음이 없는 이에게 성찬례는 ‘행사’ 정도일 뿐입니다. 거기에다 ‘의무’까지 더해지니 얼마나 미사에 가기 싫을까요. 어쩔 수 없이 억지로 가기는 하는데 가서는 주리를 틀다가 미사가 끝나고 마침성가도 끝나기 전에 서둘러 성당을 도망치듯 나옵니다. 그리고는 얼른 친구를 만나서 주일의 남은 시간을 화려하게 보내려고 기를 쓰거나 집으로 돌아가서 누워 쉬던지 텔레비전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데에 집중하지요.
성체성사는 우리가 제정한 게 아닙니다. 매번 미사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의 말씀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루카 22,19-20)
바로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시고 ‘기억하여 행하라’고 명령까지 하셨지요.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성찬례, 즉 미사를 거행하는 것입니다.
성체와 성혈은 주님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게 하고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가 그 희생과 사랑에 참여하게 하는 훌륭한 영적 양식입니다.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보물을 지니고 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이 소중한 선물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얼마나 소홀히 하고 있었는지 깨닫는다면 훗날 주님 앞에서 얼마나 큰 수치를 당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