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서 꾸짖으셨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표현을 빌리면 ‘삯꾼’이었습니다. 그들은 양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양들을 하나하나 알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목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들인 우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십자가 위에서 바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은 목자이셨지만 스스로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예수님께서 바로 나를 위해서 고통을 겪으시고 직접 어린양이 되셔서 죽음을 당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마음으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죄인인 나를 향한 그분의 놀라운 사랑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이 놀라운 신비를 제대로 묵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교리와 이론으로 배웠을 뿐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에페 2,13) 우리는 죄를 지으면 하느님과 멀어집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하느님과 가까웠지만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깨뜨려지고 멀어집니다. 죄를 짓고 나면 우리는 하느님을 피하고 숨게 됩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은 죄를 짓기 전에는 하느님과 함께 에덴동산을 아무렇지 않게 거닐며 지냈지만 죄를 짓고 나서는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우리도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과 멀어지게 되고 피하게 되고 숨게 됩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 바오로가 ‘한때는 하느님과 멀리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서 하느님과 가까워졌다고 말합니다. 곧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써 나와 하느님과의 멀어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습니다. 참사랑은 어떤 조건을 내걸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조건을 내걸고 죽으신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를 위해서 당신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합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지금 우리들을 보신다면 어떤 마음이 드실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 지금도 그때처럼 똑같이 가엾은 마음이 드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들은 목자 없는 양들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며 아파하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미사 중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선물로 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천년 전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써 우리를 하느님과 다시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셨고 이제는 빵과 포도주 안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우리는 미사 중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영혼이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서 기쁘게 살아갑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 사랑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이 신비를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고 그저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실 때 우리 안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이론이나 머리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내가 깨달을 때에만 살아 숨 쉬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늘 똑같을 것이고 우리는 신앙생활 안에서 그 어떤 기쁨이나 행복이나 평화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